충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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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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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견이야기

義狗碑(의구비)

경북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에는 이 마을 정태을(鄭太乙)의 아내 박씨(朴氏)를 기리는 열녀비와 박씨를 생전에 따르던 충견의 비(碑)가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안의 사연을 들여다 본다면 정말 가슴이 찡한 내용입니다.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왜구는 부산에서 3진으로 나누어 진격하였습니다. 그 중  제2진이 영천을 거쳐 의성군 금성면 탑리를 지나 보양면 장대리에 진을 치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주위로 피난을 갔지만 정태을의 아내 박씨와 두딸은 집안에 숨어있었습니다. 세모녀는 왜구에게 치욕을 당하느니 순절을 택하여 가문의 명예를  지키자 다짐 하였습니다.결국 잔악무도한 왜구들에게 발각되고 욕보이려자 하자 박씨는 는 두딸의 한칼에 사정없이 힘껏 찔러 숨지게 한 뒤 그 자신도 스스로 자결하였습니다.

두 딸과 그 어머니의 의로운 죽음이었지만, 아무도 시신을 돌봐주거나 장례를 치러 주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날이 가면서 시신은 부패되면서 그 참혹상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시신의 냄새를 맡고 까마귀 떼들이 몰려들어 시체에 달려드니 그 때 그 집에서 기르던 개가 나와 주인의 시체 곁을 떠나지 않고 까마귀 떼를 쫓으며 밤낮으로 사흘을 지키다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고 합니다.

후에 난을 피하고 돌아온 여러 사람이 이것을 보고 깨끗하게 죽은 ‘정태을’의 처 ‘박씨’의 정렬을 높이 칭송하고, 또한 주인의 시체를 지키다가 죽은 말 못하는 짐승일망정 주인과의 의리를 목숨으로 바꾼 의구(義狗)의 훌륭한 행동에 감탄하여 인근에 널리 이야기가 퍼져 서로서로 아름답게 여기며 전하였습니다.

그 때 마침 문소(聞韶)고을(지금의 의성(義城))원님이 이야기를 듣고 길이길이 후세에 전하여 본받게 할 일이라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의로움을 지켜 전하기 위해 비석을 세우도록 명하였습니다.그래서 ‘정태을’의 처 ‘박씨’와 두 딸의 열녀비(烈女碑)와 의구비(義狗碑)가 세워졌으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 의로움을 널리 전한다고 합니다.

 

鄭太乙妻烈女朴氏所養者也壬辰倭變邑民避亂
정태을처열녀박씨소양자야임진왜변읍민피란
山谷者爲賊所屠殺僵尸相枕籍盡爲鳥鳶狐狸所
산곡자위적소도살강시상침적진위조연호리소
噉食獨朴氏殉節之後狗在尸側凡爲獸之宋輒卽歐
담식독박씨순절지후구재시측범위수지송첩즉구
遂故尸得金完人皆歎異(出處 義城縣誌)
수고시득김완인개탄이

<국 역>

정가구는 정태을의 처인 열녀 박씨가 기르던 개이다. 임진왜란 때 읍민들이 산골에 피난했다가 왜적에게 도륙당하여 죽은 시체가 서로 엉겨 죄다 까마귀·솔개·여우들의 먹이가 되었는데 홀로 박씨만은 순절한 뒤에 개가 시체 곁에 있으면서 모든 날짐승을 오는 즉시로 몰아냈기 때문에 시체가 온전하게 보존되어 사람들이 탄식하며 이상히 여기었다.

 

출처: 의성현지 사진출처:지역정보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