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견이야기(양촌공의충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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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견이야기(양촌공의충견이야기)

충견이야기(양촌공의충견이야기)

광주광역시 양림동 오거리에는 정 엄의 효자 장려비가 있고 그 비석 옆에 사자형의 석상이 하나서 있습니다.이 곳 사람들은 이 석상을 양촌공의 충견상이라고 말합니다.

양촌공은 조선 중종 초에 전라 감사를 지낸 광주 정씨로 그가 감사를 지낼 때 토종개 한 마리를 길렀는데 이 개가 어찌나 영리했던지 주인의 신변을 지키는 것은 물론 모든 크고 작은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고 합니다. 당시 한양과 지방간의 문서 수발 등의 통신 연락 업무는 주로 역마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양촌공은 급한 전갈이 있으면 항상 그의 개를 이용해서 보냈다고 합니다.

양촌공은 항상 개를 보낼 때는 목에 엽전을 넣은 전대를 달아주었는데 이는 배가 고플 때 주막에 들러 밥을 얻어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개가 어찌나 영리하였던지 만약 주막 주인이 밥값 이상의 돈을 전대에서 꺼내면 으르렁거려 모든 주막 주인들이 이 개에게 만큼은 사람의 대우를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양촌공은 급한 일로 임신 2개월의 산기가 있는 이 개를 한양으로 심부름을 보내게 되었는데  개는 돌아오는 길에서 아홉 마리의 새끼를 낳게 되었고 주인이 살고있는 감영까지 한 마리씩 차례로 물어 나르기 시작하였고, 마지막  아홉 마리 째의 새끼를 나르다 그만 지쳐 죽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개가 죽었다고 자책하며 슬퍼하던 주인은 석공으로 하여금 견상(犬像)을 조각하게 하여 그것을 집 뜰에 두고 추모했으며, 양촌공이 죽은 뒤엔 그의 후손들이 양촌공 장려각을 세우고 그 옆에 견상을 두어 함께 기렸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개고기를 철저하게 금하고 있는 이유는??

불교의 윤회사상 중에 가장 선행을 많이 한 사람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그 다음이 개로 태어난다는데 이는 개를 사람 다음으로 중히 여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